본문 컨텐츠

본문콘텐츠

행사

Korean Stone Art Museum

  • Home
  • 행사
  • 언론보도

언론보도

[조선일보 230705] 38년前 포스텍 부지 6만평 기부… 천신일 회장 “내가 가장 잘한 일”

작성자 : 우리옛돌박물관 | 작성일 : 23-07-06 10:07 | 조회수 : 4,962

8f61b77c34a9e0314cb382228ecfd774_1688605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은 4포스텍에 63000평의 땅을 기부한 것은 내가 했던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천 회장이 그가 기부한 석조 문화재와 함께 서 있는 모습. /김동환 기자

 

4일 오전 포항에 위치한 포스텍 박태준학술정보관 옆 잔디밭에서 천신일(80) 세중그룹 회장 표지석 제막 행사가 열렸다. 1985년 포스텍에 부지 63000평을 무상으로 기증한 천 회장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천 회장은 허허벌판이던 땅에 이제는 글로벌 대학이 들어섰다포스텍에 기부한 것은 내가 했던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천신일 회장님의 부지 기부가 없었다면 이 대학은 태어날 수도 없었다이후에도 끊임없이 학교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셨다라고 말했다.

공대 중요성 뼈저리게 느껴

천 회장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그는 시골에서 농사짓던 홀어머니가 결혼할 때 논 열 마지기를 팔아 주신 1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1974년 한국 최초 석탄화학 제조 업체인 제철화학을 설립했고, 1980년대 여행업에 뛰어들며 현재의 세중그룹으로 키워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공학과 거리가 멀었다. 제철화학 회사를 운영하면서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천 회장은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하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우리 기술과 자본을 갖고 공장을 짓자는 생각으로 한국의 기술, 민족의 자본, 우리의 공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고 했다. 그는 제철화학 공장 설계와 설비를 국산화한 공로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표창을 받기도 했다. 천 회장은 한국 과학기술로 사업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공과대학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8f61b77c34a9e0314cb382228ecfd774_1688605
지난 4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텍에서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김동환 기자

천 회장이 기부한 땅은 원래 주택 건설 사업을 위해 사들였던 땅이었다. 그는 공대를 짓겠다고 하니 아무런 조건 없이 도장을 찍어줬다공대가 아닌 인문사회대라고 했으면 기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 회장은 우리나라 장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큰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개교 당시 포스텍의 총 부지 44만평 가운데 사유지는 24만평이었는데, 그중 천 회장의 땅이 4분의 1이었다. 이 땅은 현재 포스텍이 글로벌 대학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포항제철에서 천 회장에게 기부에 대한 감사 표시로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그는 조건 없이 기부한 정신이 희석되니 받을 생각도 전혀 없고 그런 이야기도 하지 말라며 거절했다.

학생들 아침밥 위한 장학금도 기부

 

천 회장은 부지 외에도 지금까지 주식과 현금 10억원 상당을 포스텍에 기부했다. 학생들을 위한 도서도 기증했다. 천 회장은 이날 제막식에서 3억원을 또 내놓았다. 이 돈은 앞으로 3년간 포스텍 학생들의 ‘1000원의 아침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천 회장은 학생들이 먹는 밥이 부실하다고 생각했다학생들에게 계란 프라이라도 하나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 아침밥 값을 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근 고려대에도 ‘1000원의 아침을 위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해에는 포스텍에 석조 문화재 14점을 기부했다. 천 회장이 석조 문화재를 수집한 것은 40년 전부터다. 그는 아침과 저녁, 비가 올 때와 맑을 때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석조를 보고 그 매력에 반해 수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나씩 모아온 석조 1250여 점은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재를 많은 이가 볼 수 있도록 대학에도 내놓고 있다고 했다. 포스텍과 고려대, 이화여대, 명지대에 그가 기부한 석조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그는 처음에는 인재 육성을 위해 기부를 시작했지만 기부를 하다 보니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기부를 해본 사람만이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지한 기자

원문보기: https://www.chosun.com/economy/science/2023/07/05/27P4GCDOD5C4TDOHMBTNHTELFE/